1925

펜디 스토리

1925년 젊은 에두아르도 펜디와 아델 카사그랑데는 핸드백과 여행 가방, 모피 제품을 파는 작은 가게를 시작했습니다. 피렌체에 머무는 동안, 아델은 가죽을 다루는 장인의 기술을 연마하였습니다. 이 가게는 로마 귀족과 그들의 아름다운 마차들로 분주한 교차로인 비아 델 플레비치토 거리에 전략적으로 위치하였습니다.

1933

펜디 스토리

펜디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옐로우 컬러인 페르가메나(Pergamena)를 론칭하였습니다. 이것은 풍부한 질감과 브랜드의 문화적 뿌리의 일관성을 보여주며 여행 가방에 반복되는 요소로 사용되었습니다.

1938

펜디 스토리

아델과 에두아르도는 닥터 백과 마구를 만들던 장인의 기술이 접목된 펜디 셀러리아 백의 전체 컬렉션을 선보였습니다. 가방들은 펜디만의 독특한 꾸오이오 로마노(Cuoio Romano)가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1946

펜디 스토리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 , Fendi의 2세대라 할 수 있는 에두아르도와 아델의 다섯 딸들(파올라, 안나, 프랑카,카를라, 알다)은 일하는 여성이 드물었던 이 시기에 가업을 이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컬렉션에 새로운 활기에 큰 비전을 더하게 됩니다. 칼 라거펠드는 훗날 이들은 "한 손안의 다섯 손가락"이라고 하였습니다. 숫자 5는 펜디의 행운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65

펜디 스토리

펜디의 다섯 자매는 회사를 혁신하고 주목받는 디자이너를 초빙하는 것에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오랜 친구인 사보렐리 디 라우리아노의 넓은 시야에 힘입어, 칼 라거펠드가 펜디에 입성하게 됩니다. 그는 첫 눈에 반하게 됩니다. 라거펠트는 자르고 주름을 만들고 염색을 하며 모피를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목표는 하루하루 착용이 가능한 가벼운 모피 코트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1967

펜디 스토리

칼 라거펠트는 "Fun Fur"라는 용어를 만들게 됩니다. 훗날 이는 전 세계에 알려진 펜디의 더블 에프(double F) 로고가 됩니다.

1968

펜디 스토리

펜디는 국제적인 성공을 이룹니다. 펜디의 가죽제품들은 저명한 미국의 소매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블루밍데일의 회장은 펜디의 모든 컬렉션을 구매하였으며, 자신의 5th Avenue 매장의 모든 위도우를 펜디 제품으로 장식하였습니다. 같은 해에 펜디는 로마의 보르고고냐 거리에 부티크를 오픈합니다.

1972-76

펜디 스토리

선견지명이 있는 펜디 자매들은 날카로운 비즈니스 통찰력과 디자인의 본능을 바탕으로 패션 산업에서 돋보이게 됩니다. 그들은 크게 사업을 확장하고 그들의 고객에게 펜디 스토어에서 개인적으로 제품들을 홍보하기 위해 해외를 여행하였습니다.

1977

펜디 스토리

펜디는 그들의 첫 번째 기성복 컬렉션을 선보이는 놀라운 방법으로 첫 번째 패션 영화인 "Histoire d'Eau"를 선택하였습니다. 또한 펜디는 최근 이 영화를 복원하였습니다. 자끄 드 바쉐는 18분의 짧은 영화에서 젊은 여성이 그녀의 부모에세 바덴 바덴에서 스파를 하고 있다고 말한 뒤, 실제로는 로마에서 휴양을 즐기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펜디 옷을 입고 그녀는 도시의 분수에서 목욕을 하고, 물을 유리병에 수집합니다.

1983

펜디 스토리

페퀸 패브릭이 탄생하였습니다. 갈색과 황토색의 스트라이프 패턴은 펜디의 대표적인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홍콩에 아시아 첫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가 문을 엽니다.

1985

펜디 스토리

펜디는 두 가지 면에서 기념비적인 해였습니다. 펜디의 60주년 이자 칼 라거펠트와의 협업 20주년이었습니다. 로마의 국립현대미술관은 “Un Percorso di Lavoro"라는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이는 트렌드를 이끈 브랜드의 성공을 되짚어 보고, 모피 안에서의 칼 라거펠트의 여행을 회상하는 전시였습니다. 첫 번째 펜디 향수가 론칭하였습니다. 런던의 해롯 백화점은 그들의 역사상 최고로 26개의 모든 윈도우를 펜디에게 제공하여, 수 많은 펜디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1987

펜디 스토리

펜디가 처음으로 미국에 부티크를 오픈합니다. 이 스토어는 뉴욕 5번가에 위치하였습니다. 펜디 카사와 남성 향수가 처음 론칭하였습니다.

1988

펜디 스토리

펜디는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의 지휘 아래, 고급 워치 분야를 탐구하였고 이윽고 펜디의 워치 컬렉션을 런칭하였습니다. 스위스에서 제작되는 펜디의 워치 제품들은 고급스러운 소재와 풍부한 컬러의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브랜드의 이상적인 스타일뿐만 아니라 스위스 워치메이킹 장인의 기술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1990

펜디 스토리

첫 번째 남성복 컬렉션이 밀라노에서 선보입니다.

1994

펜디 스토리

안나 펜디의 딸인 실비아 벤츄리니 펜디가 가죽제품과 액세서리를 담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펜디에 입사하였습니다. 가족 구성원의 창조적인 도움을 모색하던 라거펠트에 의해 발굴된 실비아 벤츄리니 펜디는 닥터 백과 베스트 아이템인 셀러리아 라인을 재해석하여 순간적인 흥행을 이끌어냈습니다.

1997

펜디 스토리

실비아 벤츄리니 펜디는 컬트 액세서리를 만들고 잇 백(it bag) 현상의 시발점이 된 바게트 백을 론칭하였습니다. 하나의 스타일 안에 컬러와 장식, 질감의 수 많은 변화가 담겼습니다.

2001

펜디 스토리

LVMH가 펜디의 최대주주가 되면서, 펜디 미래의 성장과 국제적인 사업 확장이 이루어 집니다. 펜디 스토어의 수는 10년 사이에 2개에서 196개로 늘어나게 됩니다.

2005

펜디 스토리

마이클 버크가 최고경영자로 임명되었습니다. 그의 다양한 시도 중에 하나는 로마의 뛰는 심장에 피터 마리노가 디자인한 새로운 로마 본사 팔라쪼 펜디를 구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청사진은 현대적인 장식들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없습니다. 팔라쪼 펜디는 주로 주얼리 컬렉션의 로고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2007

펜디 스토리

펜디는 중국의 만리장성에서 숨 막히는 런웨를 선보이며, 럭셔리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거대한 더블 F로고는 주변의 산에 투영되었습니다. 이는 패션 하우스가 만리장성에서 선보인 최초의 쇼였습니다. 이 쇼는 1년 동안 중국의 행운의 숫자인 8을 위주로 준비되었습니다. 88명의 모델과 88미터에 이르는 긴 캣워크가 마련되었습니다. 이 화려한 쇼는 달에서도 볼 수 있는 첫 번째 쇼였습니다.

2009

펜디 스토리

실비아 벤츄리니 펜디는 피카부 백을 디자인 하였습니다. 이 백은 출시하자마자 전 세계적인 스타일 아이콘이자 수 많은 유명인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2012

펜디 스토리

피에트로 베카리가 최고경영자로 임명되었습니다. 펜디는 여러 활동을 통해 바게트의 15주년을 축하하였습니다. 팝업 스토어를 열고, 리졸리와 함께 두꺼운 책을 제작하였으며, 6 종류의 리에디션 바게트를 출시 하였습니다. 바게트매니아 이벤트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였습니다.

2013

펜디 스토리

펜디의 로마의 유산을 복원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트레비 분수를 시작으로 아름다운 분수들이 복원 될 예정입니다. 이는 로마는 펜디의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었음을 알리는 증거이며, 진정한 러브스토리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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